MRI로 치매 조기 발견의 열쇠
이순실 씨는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탈북민 중 한 명입니다. 방송인이자 사업가로 활동하며 ‘평양댁’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오늘은 이순실 씨의 프로필과 함께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이순실 씨는 1960년 평양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고향이라고 여기는 곳은 황해북도 평산군 와현리라고 합니다. 평산군에서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곳에 많은 추억이 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이순실 씨의 가정 형편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의 할머니는 은퇴 후에도 개성에서 진행되는 국가 행사의 떡을 만들었고, 어머니 역시 음식 솜씨가 뛰어나 개성 지역 최전방 군부대의 요리사로 일했다고 합니다.
이순실 씨는 11년간 조선인민군 간호장교로 복무했습니다. 그녀는 중위 계급까지 올랐고 조선로동당 당원이기도 했습니다. 군 복무 시절의 경험은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군 복무 중 있었던 일들을 인터넷에 많이 올렸는데, ‘북한여군수기’라는 제목으로 검색하면 그녀의 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평양개성고속도로 공사 중 발생한 예성강교 붕괴 사고와 관련된 글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이순실 씨의 삶은 급격히 어려워졌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나왔을 때,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처참했습니다. “제대하고는 국가에서 해주는 것으로 사회 나가서도 잘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제대비 40원을 받았습니다. 일반 간부의 월급이 70원일 때라 큰돈이었죠. 집에 가보니까 동생도 다 꽃제비 나가고 엄마도 돌아가시고 가제도구는 다 장마당에 팔아서 없지 쌀독에 거미줄이 쳐져있을 정도였어요.”라는 말을 통해 당시 상황의 절망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순실 씨는 굶주림을 견디기 위해 군 복무 시절 알게 된 중대 소대장과 결혼했지만, 남편의 가정폭력과 시어머니의 폭언으로 인해 약 6개월 만에 집을 나왔습니다. 임신한 몸으로 꽃제비 생활을 시작했고, 혜산청년역 길바닥에서 딸을 출산했습니다. “4일 굶은 건 아무것도 아냐. 내가 이러다 죽겠구나. 점점 맥은 없고 축 늘어지고 잠만 자고 졸리기만 하고 아무 데나 앉으면 해 양지쪽에 앉으면 그냥 자고 있어. 그러다 고꾸라지면 그냥 죽는 거지.”라는 그녀의 고백은 꽃제비 시절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이순실 씨는 량강도 혜산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면서 총 9번의 탈북과 8번의 북송을 반복했습니다. 그녀는 딸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중국으로 재탈북을 시도했습니다. “중국으로 도망쳤지만 여덟 번 북송됐고, 마지막 아홉 번째 탈북 땐 중국 인신매매단에게 세 살배기 딸을 빼앗기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북송될 때마다 받은 고문의 흔적이 아직도 몸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탈북을 시도했습니다.
2007년, 이순실 씨는 마침내 몽골 루트를 통해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47세였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처음에는 공사장 함바에서 일하거나 회사에서 컴퓨터 부속품을 만드는 일을 했지만, 직장에서 탈북자라고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아 독립을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북한에서의 경험을 살려 북한 음식점을 열었고, ‘평양댁 순실이네’라는 이름의 100평 규모 식당을 운영하며 평양의 음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가게가 ‘평양댁 순실이네’란 이름이고 100평 규모입니다. 홀에서 일하는 사람이 9명,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4명이예요. 식탁은 38개입니다. 고기, 냉면, 온면, 순대, 만두, 녹두전 등 평양의 음식을 하고 있어요.”
이순실 씨는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방송인으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에서 북한의 실상과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2018년부터는 인터넷 방송도 시작했습니다. 대도서관과 함께 요리, 먹방 방송을 컨셉으로 한 방송을 진행하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업 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연 매출 100억 원이 넘는 CEO가 되었습니다. 평양냉면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북한 음식과 식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5개의 공장을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평양냉면이라든지 여러 가지 식품을 팔다 보니 연 매출이 100억이 넘는다”면서 “운영 중인 공장만 5개”라고 말했습니다.
이순실 씨는 방송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특히 그녀가 ‘남편이 3명’이라고 밝힌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남편이 많다. 북조선, 중국, 남조선에 각각 한명씩 있다. 북한에서 남편과 살다가 중국으로 갔는데 거기서 인신매매로 팔려 갔다. 한국에 와서 만난 남조선 남편은 하늘의 천사”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남편은 탈북민 컴퓨터 교육 자원봉사 선생이었으며, 교육 마지막 날 이순실 씨가 먼저 같이 살자고 해서 초고속으로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6세 연하이며, 현재는 이순실 씨의 식품 사업을 함께 돕고 있다고 합니다.
이순실 씨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북한에서의 고난, 9번의 탈북 시도,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성공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2024년 7월, 이순실 씨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 프로그램에 오랜만에 출연해 근황을 전했습니다. 사업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북한의 현재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도 표현했습니다. 이순실 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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