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일 평론가 별세 (대장암)
박충권은 어린 시절, 고난의 행군이라는 북한의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2005년, 그는 국방대 3학년 때 학생 간부로 활동하며 학내 보위부 지도원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체 학급 80명 중 10%에 달하는 8명이 학우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북한의 주민 감시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깊이 깨닫게 하였고, 체제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박충권은 국방대 졸업 후 군수공장에 배치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고위층의 아들 친구가 조선로동당 간부의 첩에게 뇌물을 주면 평양으로 배치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노동당에 대한 마지막 남은 신뢰마저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로 하여금 북한 체제를 벗어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했습니다.
2007년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가 장사를 시작하며 탈북을 준비했습니다. 1년 8개월의 준비 끝에, 그는 2009년 4월 10일, 탈북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무산군에서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이후 3일 만에 중국 단둥시에서 한국인 브로커를 만나 한국 여권을 얻고, 크루즈선을 통해 인천항으로 입국했습니다.
남한에 도착한 후, 박충권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박사 과정을 통해 공학 박사 학위를 2017년에 취득했습니다. 그는 현대제철 연구개발본부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자동차 소재 개발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는 주로 자동차 엔진, 변속기, 파워트레인용 부품소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2023년 12월, 국민의힘으로부터 인재영입 제안을 받은 그는 연구원 출신으로 대한민국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2024년 4월 10일,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2번으로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박충권은 남북 관계와 정치뿐만 아니라 한국 소재산업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소재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박충권은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탈북민으로서 남북한의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박충권은 기술적 전문성과 정치적 역할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고자 하는 탈북민 출신 엔지니어이자 정치인입니다. 그의 독특한 경험과 비전은 남북한의 통합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올여름,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로 추진 중인 ‘민생회복 소비쿠폰’ 덕분에 수많은 국민들이 식비와 생필품 같은…
급격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지금, 노인의 신체적·인지적 기능 저하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 돌봄 제도인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한때 ‘꿈의 휴양지’로 불리던 인도네시아 발리가 2025년 현재, 치명적인 전염병인 광견병으로 인해 다시 한 번…